영역 특수 모듈

메모

모듈의 영역 특수성에 대한 메모.

Modularity of mind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여러가지 영역 특수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면서 하나의 영역 범용 모듈이 여러 개의 영역 특수 모듈을 대신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듈도 결국 진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역 특수성 논쟁을 조금 더 잘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새로운 모듈은 오랜 시간 동안의 선택압에 의해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한다. 이 때 이 새로운 모듈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1) 발생 상의 오류 등으로 인해 기존의 모듈의 복사본이 한 벌 더 생기면서 기존의 모듈과 다른 방향으로 특수화되거나, 2) 기존 모듈의 일부 영역이 새로운 선택압에 의해 특수화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적응하는 등, 기존의 모듈을 기반으로 하여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영역 특수성 논의에 몇 가지 함의를 가진다.

첫째, 모듈 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 제리 포더에 의하면 모듈의 중요한 특성은 정보 은닉 혹은 캡슐화인데 새로운 모듈이 기존 모듈과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기존 모듈을 기반으로 진화한다고 가정하면 그같은 특성이 자동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물론 이와 같은 특성이 존재할 경우 각 모듈들이 상호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고, 계통상 오래 전에 획득된 모듈은 잘 구분되는 경계를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모듈이 그런 특성을 가진다고 보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오히려 대부분의 모듈은 경계가 애매하게 뒤엉켜 있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둘째, 처음에는 영역 특수 모듈이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영역 범용 모듈로 변해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듈이 비슷한 종류의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기 위해 약간 확장될 수 있고, 이러한 확장이 누적되면서 점진적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설계를 할 때에도 처음에는 특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작성한 후 점진적 변형을 통해 다양한 일반적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재사용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유용하게 쓰이며 이를 진화적 설계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셋째,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한 여러 모듈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의 모듈로 합쳐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선택적응도 지표에 관여하는 모듈의 경우 유전자 포획 등의 효과로 인해 오랜 세월에 걸쳐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점진적으로 뒤엉킬 가능성이 있다.

넷째, 모듈의 경계가 애매해진다는 문제는 모듈 간의 수평적 경계 뿐 아니라 수직적 경계인 모듈간의 계층(hierarchy)에 대한 논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지심리학에서는 모듈 간의 잘 정의된 수직적 계층을 가정한 후, “top-down” 혹은 “bottom-up”, “feedback”과 같은 용어로 인지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견해는 마음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우려가 있다. 잘 정의된 수직적 위계 구조는 그 구조에 본질적으로 내제된 장점도 있겠으나 이게 유일하게 합당한 구조인 것도 아니고, 인간 엔지니어가 아닌 진화에 의해 설계된 시스템이 굳이 이같은 구조에 갇힐 것으로 가정할 필요도 없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등은 잘 정의된 위계구조가 아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얽혀진 Tangled hierarchy가 마음의 작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AK,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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